이보라(영화평론가) ‘좋은 대학’이라는 성취를 담보한 (것이기나 한지 의문스러운) 미래를 위해 현재를 반납해야 하는 한국 청소년들의 상황을 면밀한 관찰 없이 비추기만 하는 것은 상투적이고 효용도 없는 일이다. <잠자리 구하기>의 과녁이 거기에 있었다면 우리는 이 영화를 여러 번 꺼내볼 필요가 없을 테다. 홍다예 감독의 <잠자리 구하기>는 공교육 체계를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니라, 도리어 생의 특정 시기를 통과하는 이들의 일기를 종합한 에세이에 가깝다. 감독이 고등학교 3학년이던 시절 촬영을 시작해 재수를 거쳐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그 작업이 이어진 이 다큐멘터리에는 분명 많은 인터뷰가 등장하지만 영화는 특정한 목표점을 달성하려 취재한 기록물에 다가가기보다는 청(소)년들의 충동이 가감없이 분출되는 돌파구를 자신의 정체성으로서 삼은 듯 보인다. 다큐멘터리라고 어떻게 ‘가감없이’ 투명하기만 할 수 있겠냐고? 물론 <잠자리 구하기>에도 ‘허구적’ 대목들은 등장한다. 카메라 앞의 인물들은 종종 경직되거나 일상과 사뭇 다른 태도로 스스로를 조작하고(할 수밖에 없고), 편집은 의도와 무관하게 타인을 오남용하기도 한다. 감독의 내레이션이나 자막이 여러 번 개입되는 지점들도 다큐멘터리가 갖는 픽션적인 성질과 연관지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본작에서 중요한 것은 여기에는 여고생들의 위악과 냉소까지, 이들의 친구인 홍다예 감독의 시선을 통해 자연스럽게 담긴다는 것이다. 극영화에서 요상하게 포장되곤 하는 소녀들의 비애는 없다. 대신 방사와 침잠을 오가는 여고생들의 역설적인 이면이 과감하게 포착된다. 오프닝에서 여고생들은 창 밖으로 개기월식을 보기 위해 복도를 달리고 “개쩐다”를 외치며 소리를 지른다. 딱히 세상에 시끄럽게 공유할 사건도 아닌 데서 이들은 비축해놓은 에너지를 기꺼이 분출한다(이 대목에서 우리는 이 어두운 밤에도 이들이 여전히 학교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된다). 이들의 충동과 호들갑이 거리낌없이 노출될 수 있는 데는 <잠자리 구하기>의 카메라가 이들에게는 홍다예라는 친구의 카메라였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이 점은 감독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서야 한 친구를 통해 ‘반 아이들이 카메라 때문에 자신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대목과도 의외로 이어진다). 달리 말해 <잠자리 구하기>의 뼈대는 대부분 감독의 생각을 담고 있으며 자살충동과 자해의 흔적 등 감독의 내밀한 부분까지도 공개되고 있지만, 그의 개인사는 실상 고등학교 3학년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 아주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그래서 <잠자리 구하기>는 친구들과의 우정이 변모하는 양상을 따라가는, 우정에 관한 다큐멘터리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열아홉부터 스물다섯까지 이르는 ‘나’와 주변 친구들의 면면을 확인하면서, 감독이 그리는 자신의 (반)성장의 시기가 오로지 ‘나’로 수렴하는 것만이 아님을 상기하게 된다. 관객은 이 영화가 친구의 촬영물이라는 이유로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고등학생 시절이 노출되기를 쉬이 허락한 수많은 ‘친구들’의 얼굴들을 보게 된다(물론 이들은 대부분 이 다큐멘터리가 극장에서 상영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지만, 어쨌거나 흑역사로 보일 법한 이 시기를 렌즈 너머 홍다예라는 친구에게 드러내준 것이다). <잠자리 구하기> 속 또래들은 자기소개서의 문장을 꼼꼼히 검토해주고, 혼란스러운 수능일에 서로를 격려해주며, 선생의 뒷담화를 나누는 등 상호 의지로 뭉치다가도 이따금 어떤 공감도 주고받지 못하거나 상처가 될 만한 대화를 맥없이 이어나가기도 한다. 감독이 친구에게 쓰기로 한 편지를 부치지 못하고 결국 내레이션으로밖에 발화할 수밖에 없었던 데서 볼 수 있듯 환경과 조건이 변화하면서 우정은 그 모양을 바꿔나가고, 결국 이들은 서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각자의 먼 거리를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친구에게 편지가 전해지는 일은 없었다”는 문장이 감독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저 자막으로 제시되는 지점, 그리고 현재에 가까운 결말부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인터뷰를 진행하거나 화면에 담아낼 수 없었던 이들의 생략된 존재가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유다. 우정은 지속될 수 있을까? 특히나 졸업 이후에 말이다. 부당한 체계가 기만적으로 긍정하는 ‘친구들’이라는 집체가 별안간 졸업을 기점으로 와해될 때,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하고 이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잠자리 구하기>는 어떤 이유에서건 나를 떠나간 친구들을 어렴풋이 떠올리게 만드는 과격한 일기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