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탐정, 기계

이연숙(리타) 주로 영상 매체를 통해 소위 ‘사회 문제’로 분류되는 주제를 ‘다큐멘터리적’ 방식으로 다루는 것으로 알려진 차재민은, 2010년 첫 그룹전을 치른 이래 약 12년간 작업을 발표해왔다. 지난 5월 그는 <네임리스 신드롬>(2022)과 <제자리 비행>(2022)으로 리움 미술관의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을 수상했다. 다섯 장으로 구성된 ‘에세이 필름’인 <네임리스 신드롬>은, ‘진단명이 없는 질병’을 앓는 여성들의 실제 경험담과 질병이라는 타자와 자신의 관계를 다루는 텍스트들을 허구적 ‘나’의 목소리를 통해 재구성함으로써, 결국 근대적 (시각) 주체의 관점에서는 볼 수 없고 그러므로 없다고 믿는 고통의 비가시적인 차원을 의미화하려 시도하는 작품이다. 이 글은 다소 경멸적인 어조로 사용되는 ‘인상 비평’에 가까운 짧은 글이 될 예정이기에, (이번 작가전에는 포함되지 않은 작품인) <네임리스 신드롬>에 대해서 이 이상의 분석을 덧붙이기란 곤란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임리스 신드롬>은, 차재민이 자신의 SNS를 통해 이번 작가전에 대해 짐짓 쑥스러워하는 태도로 덧붙인 문장인, “학부, 유학 시절에 만든 어설프고 요상한 작업들”과 ‘코어(core)’를 공유하는 그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이번 작가전을 통해 상영된 총 9편의 작품에서 추출된 공통의 ‘인상’들을 나는 ‘그림자’, ‘탐정’, ‘기계’라는 세 단어를 통해 더듬어 보려 한다. 먼저, ‘그림자’부터 시작해보자. 플라톤의 유명한 ‘동굴의 우화’에서 그림자는 동굴 밖의 참된 실체를 반영하고 있을 뿐인 거짓된 형상이다. 오늘날 우리 중 몇몇은 참된 실체라는 허구란 오직 거짓된 형상의 반복적인 재생산을 통해서만 존재 가능하며, 그러므로 거짓된 형상’들’이야말로 유일한 실체적인 효과라고 본다. 이러한 관점은 필연적으로 그림자라는 효과를 누가, 어떻게, 왜 재생산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제 플라톤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동굴의 우화’에서 죄수들을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 그림자로 인형극을 연출하는 그 “누군가”에게 주목해보자. 물론 가장 단순한 관점에서, “누군가”는 인형극을 통해 죄수들을 웃고 울게 만드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일 테다. 그는 자기가 가진 재료를 조합해 단순히 재료의 합으로 환원될 수 없는 특정한 그림자를, 이미지를 생산해낸다. 그는 형상-그림자의 ‘닮음’이라는 시각적 유사성에 의존하는 고전적인 재현의 체계와 씨름한 최초의 예술가다. 차재민은 바로 이 “누군가”의 먼 후손으로, 지극히 이데올로기화된 방식으로만 재현되는 소수자 집단/개인의 흐릿한 그림자’들’을 재발견/재조합하는 것에 관심을 둔다. 두 번째 단어는 ‘탐정’이다. 19세기 영국을 발원지로 하는 문학 장르 중 하나인 ‘탐정 소설’(또는 ‘추리 소설’)은 특정한 규칙/독자/생산-유통 방식을 기준으로 분류되는 ‘장르 문학’의 하위 분과다. 다른 장르 문학과 마찬가지로 탐정 소설 역시도 해당 장르의 독자들에게만 공유되는 암묵적인 규칙을 전제로 하는데, 요컨대 1)탐정 자신은 절대 범인이 될 수 없다거나 2)범인으로 자연, 귀신, 쌍둥이, 정신이상자를 사용하면 안 된다거나 3)독자에게 공유하지 않은 핵심 단서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규칙의 예시가 될 수 있겠다. 그러나 규칙의 세부적인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탐정 소설의 구성 요소와 그것의 서술 방식이다. 최소한 탐정과 사건이 있어야만 성립 가능한 이 장르는, 단숨에 모든 것을 말하거나 보여주지 않는다. 각각의 탐정은 자신의 방식대로 심문하고, 수집하고, 추측하고, 발견하고, 의심하는 과정을 거치며 점차 사건의 핵으로 다가가는데, 이때 발생하게 되는 것이 서스펜스–즉 긴장감이다. ‘탐정 소설’과 달리 차재민이 다루는 ‘사건’들에는 결코 명확한 ‘해답’이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유사한 장르적 특징을 공유하는 그의 작업 속에서, 관객들은 대단히 난해하고 중대한 무엇에 근접하고 있다는 일종의 예감에 사로잡힌다. 앞서 ‘그림자’가 재현(의 체계)에 대한 차재민의 관심을 가리킨다면, ‘탐정’은 그의 작품 전체에서 감지되는 암시적인 ‘분위기’를 가리키는 키워드다. 마지막으로 ‘기계’다. 통상 살아있는 것의 대립항에 위치한 것으로 간주되는 기계는 일견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개념이다. 그러나 들뢰즈의 관점에서 기계란 이질적인 복수의 항들이 서로에게 접속됨으로써 전에 없던 새로운 흐름을 생산하는 모든 것들을 가리킨다. 오랫동안 (노동하는 인간을 향한) 공격, 파괴, 착취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기계는 이제 들뢰즈를 통해 차이를 생성하는 절단과 접속의 최소 단위로서 받아 들여진다. 이번 작가전에서 상영될 9편의 작업은 지난 십수년간 차재민의 성장 또는 변화를 보여주지만, 이는 완성된 ‘차재민 스타일’을 향해 달려가는 여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다루는 각각의 사건 속에서 그것의 고유한 상태를 추출해 이를 시각적 언어로 다시 쓰는 차재민의 작업 방식은, 어떤 의미에서 엄밀한 객관성이 요구되는 화학적 공정을 떠올리게 만든다. 당연하게도 그가 다루는 재료에 따라 매번 다른 실험이 요구되므로, 결과물 역시 매번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존재의 가장 적합한 시각적 존재 방식을 공식화(formula)하기를 원하는 낭만적인 화학자가 아닐까? 때로는 냉담해 보이기까지 하는 기계적 관찰자로서 차재민이 절단하고 접속하는 독특한 관점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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