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하이재킹하기

박동수(영화평론가) ‘하이재킹(Hijacking)’은 원래 금주법 시기 불법제조주류를 운송 중에 강탈하던 미국 갱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현재는 운송수단의 납치, 특히 항공기 납치에 주로 사용되는 용어다. 때문에 하이재킹은 운송수단을 강탈한다기보단, 무언가를 실어나르는 장소 자체의 강탈에 가깝다. 조현철·이태안 감독의 <부스럭>은 자신이 놓인 장소를 하이재킹한다. 26분의 단편영화였던 이 영화가 우선 하이재킹하는 대상은 자신이 속한 프로그램인 <전체관람가+:숏버스터>다. 여러 연출자가 ‘평행우주’를 컨셉으로 제작한 단편영화를 선보이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었다. 평행우주라는 사뭇 무한해보이는 컨셉 속에서 두 감독이 택한 것은, 영화는 그 자체로 현실의 다른 버전을 발생시킨다는 지점이다. 장편으로 재탄생한 <부스럭>은 기존의 26분을 모두 포함함과 동시에, 단편을 보고 난 이후 두 감독과 천우희 배우가 윤종신, 문소리, 노홍철, 김도훈 등의 프로그램 패널과 나눈 상황을 포함한다. 사실 이 컨셉 차체는 티빙(TVing)을 통해 공개된 <전체관람가+:숏버스터>의 5, 6화에서 이미 다뤄진 바 있다. 단편 버전 <부스럭>과 메이킹필름, 영화에 대한 연출자와 패널 사이의 대화 등은 이미 프로그램 내부에 담겨 있다. 그 시점에서 이미 두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발생한 장소를 이미 하이재킹하고 있다. 영화는 현실의 모방이지만, 동시에 예술적 모방은 결국 모방의 대상과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때문에 영화를 통해 형성된 허구적 세계는 이미 평행우주다. 조현철·이태안 감독은 <부스럭> 안에서 그 경계에 균열을 내고 싶었다 말하고 있다. 두 사람이 밝히고 있듯이, <부스럭>은 <로스트 하이웨이>를 비롯한 데이빗 린치의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받았다. 린치의 영화들은 세계의 경계를 그것이 무너지는 시점까지 밀고 나간다. 이를테면 <트윈 픽스>의 인물들은 시즌3에 이르러 수많은 세계의 분기점 속에서 완전히 좌표를 상실하게 되고, <인랜드 앰파이어>의 로라 던은 극 중의 할리우드와 극 밖의 할리우드 사이의 혼란 속에서 절규하며,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두 주인공은 복수의 세계를 살아가는 복수의 자아를 지닌 인물들이다. <부스럭>에서 두 감독이 언급하는 <로스트 하이웨이>의 그 장면은 따로 설명이 필요하진 않을 것 같다. 영화는 현실을 현실과 달라 보이게끔 모방한다. <부스럭>의 단편 파트에 해당하는 장면들에서 우리는 극중 인물들을 촬영하는 카메라맨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영화 속 세영과 현철이 그들 각자의 이름으로 존재함과 동시에, 천우희와 조현철이라는 영화 바깥의 이름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영과 현철, 그들의 친구가 살아가는 <부스럭> 속 허구의 세계는 그 또한 촬영 중인 현실로써 이중의 레이어를 얻게 된다. 다시 말해 극 중 인물들이 존재하는 영화 속 현실은 그것을 촬영하는 이들의 존재로 인해 또 다른 영화로 하이재킹 당한다. 단편 <부스럭> 이후 등장하는, <전체관람가+:숏버스터>에 속한 장면들은 그러한 하이재킹이 스크린 바깥의 현실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의 본명을 캐릭터의 이름으로 사용한 조현철은 세영과 천우희라는, 하나의 얼굴을 공유하는 두 인물이 갈라지는 경계를 직접 교란한다. 단편 <부스럭>의 마지막 장면에서 세영과 통화하는 조현철의 목소리는 영화 속 인물인 ‘현철’의 목소리임과 동시에 영화 바깥의 연출자인 ‘조현철’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영화의 한 장면으로서 <부스럭>에 삽입된 메이킹영상은 이를 확인시켜준다. 그 메이킹영상을 관람하는 프로그램 패널들의 모습은 카메라에 의해 촬영됨에 따라 다시 한번 하이재킹된다. 린치가 자신의 영화 속 인물들을 다른 세계로 튕겨내듯 납치한다면, 조현철·이태안은 인물이 아닌 장소 그 자체를 납치한다. 하이재킹이라는 행위의 대상은 대상은 인물이 아니라 인물들이 놓인 장소 자체다. 조현철·이태안은 프로그램 패널들을 영화 속으로 옮겨오는 대신 그들이 놓인 장소 자체를 영화로 하이재킹한다. JTBC라는 방송사가 제작하고 티빙이라는 OTT 플랫폼으로 방영된 단편 <부스럭>이 놓여 있던, 한편의 영화가 존재하기 위해 요구되는 자본과 유통망의 하이재킹을 시도하는 것이다. 물론 감독이 스스로 자신의 방법을 폭로함으로써 영화를 완성시키는 방식은 영화를 다소 얕게 만든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부스럭>이 던지는 질문은 흥미롭다. “영화관의 공간을 보고 운송수단 차량의 내부구조를 상기시킨다”는 폴 비릴리오의 말처럼 영화관은 관객을 잠시간 현실과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환영이었다. 하지만 <부스럭>이 놓인 장소는 영화관이 아니(었)다. <부스럭>은 영화의 장소를 영화관이 독점하던 시기가 저물어가는 지금의 시점에서, 영화의 장소가 한없이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퍼포먼스에 가깝다. 영화를 매개로 삼아 영화가 존재하는 평행우주들을 한 군데로 하이재킹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하이재킹은 <부스럭>이 상영되는 모든 장소를 잠재적인 대상으로 삼는다. 그곳은 물론 오늘 이 영화가 상영될 인디포럼 월례비행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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